전문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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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점에 선 지방자치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18.06.15
조회수
442
이해식
자치분권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강동구청장)

  역사적인 북미 회담이 성사되었다. 70년 적대관계가 대전환점을 맞았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머지않아 보인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 걸 보면 앞길이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70년 묵은 구 체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 없지 않겠는가. 새로운 미래가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라면 좀 더디다 해도 묵묵하게 전진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모두에게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도 70년 묵은 시스템이다. 제헌 헌법에 담긴 지방자치 규정이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더욱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3공화국은 지방자치를 폐지하였다. 1987년 제9차 개정 헌법에서 유보조항을 삭제했지만 시행까지는 몇 년이 더 필요했다. 


  시간이 흘러 자연적으로 실시된 것이 아니다. 야당 지도자 김대중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있어야 했다. 1995년에 자치단체장을 직선으로 뽑음으로써 지방자치는 비로소 제 모양을 갖추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중앙집권적 체제 하의 제한적 지방자치라는 근본 특성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방자치단체는 반려동물 놀이터를 ‘자율적으로’, ‘자기 책임 하’에 만들 수 없다.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문제를 그 구성원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공원 및 녹지등에 관한법」으로 놀이터 설치가 가능한 공원의 규모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 주택가 주차난을 덜기 위한 공영 주차장을 주거지 인근 어린이공원 지하에 조성하려 해도 푸른도시국의 업무지침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것은 법령도, 조례도 아니다. 하지만 ‘자치구’ 주차행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도로에 유턴을 허용하거나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도 경찰청의 규제 심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찰자치가 되면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교통체계나 도로와 보도의 기능을 사람 중심으로 할 것인가, 차량의 소통 중심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도시계획과 건축의 내용이 달라지는데, 이점은 경찰자치를 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학교의 학생들이 해마다 줄어들고 빈 교실이 늘 뿐 아니라 쇠퇴하는 도심에는 폐교 직전의 학교도 생기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빈 교사를 활용한 교육과 복지 향상을 위한 방안을 제시해도 학교는 공동체 밖의 성역이다. 교육자치가 일반자치가 분리되어 있어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다. 공동체 내의 문제를 공동체의 구성원이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 불능’의 낡은 구조 때문이다. 


  지방의 공무원들의 행정 행위는 또 어떤가. 지방행정은 지방의 조례에 근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 그래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사무와 지방사무의 비율을 4:6으로 본다. 국가사무 보다 월등히 많은 지방사무가 조례에 근거해 집행된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선의 지방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분장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준거로 삼는 것이 조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중앙정부의 지침이나 예규, 광역단체의 지침 등이다. 조례는 그 근거가 되는 법률의 시행규칙 정도와 흡사하다. 그다지 중요한 참고사항이 못된다. 


  하지만 중앙정부나 광역단체에서 정한 지침을 어겼을 경우에는 감사에서 지적되고 신분상 조치가 따른다. 공무원들로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은 지방자치 일선에서도 강력하게 관통하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무를 이양해도 예산과 인력은 넘겨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양된 사무를 처리하는 규칙을 여전히 가지고 통제권을 행사하는 한 그것은 이양된 사무라기보다는 떠넘긴 일감일 뿐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자치와 분권은 이렇듯 멀고도 험하다. 자치단체장을 직선으로 선출한 1995년 이후의 제도적 개선과 지방자치 발전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수직적 행정 체계는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별한 변화가 없는 이상 달라지기 어렵다. 분권을 시혜로 생각하고 약속 이행 정도로 보면 과거의 우를 되풀이할 뿐이다. 판을 뒤집는 근본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자치와 분권을, 비대한 중앙권력을 주민에게 내려놓는 ‘촛불 민심의 이행’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연방제 수준의’, ‘획기적인’ 등의 수사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진 권력의 이상 집중을 해소하고자 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이 역시 70년 묵은 낡은 시스템을 새롭게 바꾸는 새로운 출발이라 믿는다. 개헌 논의는 구체적인 화답이 아니었을까.   


  지난 3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였다. 헌정사상 6번째였다. 하지만 지방자치를 주요한 개정 사항으로 포함한 개헌안으로는 첫 번째였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결과로서,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체제를 지방분권형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헌법적 측면의 최초 시도였다. 


  비록 지난달 국회에서 안건으로는 폐기되었지만 개정안의 내용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헌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80%에 달하는 최근의 조사 결과는 이를 반증한다. 국회는 개헌을 다시 추진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그 기준은 대통령 발의안에 담긴 정도의 내용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치 분권의 가치 정립을 확고히 하고 대통령 개헌안에 담긴 지방분권 관련 조항의 실현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개헌안이 국회에서 폐기된 후 개헌 이슈를 지속적으로 살려가려는 노력이 미진한 것은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지방선거 등의 메가톤급 이슈가 이어진 까닭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국회는 다시 여야 간 개헌 협상에 나서야 한다. 재야 시민단체 역시 국회에 대한 개헌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의 지방자치를 선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형태로 바꿔내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 고유의 독창성과 창조적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하게 함으로써 저출산 고령화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넘는 틀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방자치가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주도하는 미래지향적 국정운영 시스템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